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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무쌍

by small008 2025.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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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안개가 내려앉은 전장. 피비린내가 짙게 깔린 그곳에, 홀로 선 사내가 있었다. 모두가 그의 이름을 속삭였다.
"아비무쌍(我非無雙)..."

전설처럼 퍼진 그 이름.
"나는 무쌍이 아니다."
그러나 그를 본 이들은 누구나 알았다. 그야말로 무쌍이라 부를 존재임을.

낡은 갑옷을 두른 사내는 거친 숨을 내쉬며 검을 쥐었다. 그의 주위엔 쓰러진 병사들의 흔적이 가득했다. 붉은 망토가 바람에 휘날리며, 무겁게 찢긴 하늘 아래 그의 실루엣을 더욱 또렷하게 그렸다.

"또 온단 말인가."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멀리서 쇠창을 든 기병대가 몰려오고 있었다. 마치 파도처럼 거센 기세. 그러나 사내의 눈빛은 담담했다. 검붉은 눈동자에 담긴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단 하나 — 끝내야 한다는 결의.

첫 번째 기병이 다가오자 그는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휘익— 검이 허공을 가르자 기병의 갑옷이 두 동강 났다.
다른 이들이라면 눈으로 쫓을 수도 없는 속도.
그런데 그는 그저, 땅을 딛고 서 있을 뿐이었다.

"이런 괴물이..."
살아남은 자들이 경악했다.

하지만 그는 괴물이 아니었다. 한때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가족을 잃고, 동료를 잃고, 믿음을 잃은 채 살아남은 사내.

그 이름을 짊어지고, 무쌍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자.

"나는 무쌍이 아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외쳤다.

붉은 안개 속에서, 검은 파도가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사내는 다시 홀로 남았다.

전장 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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